자기혁명 책 소개
시골의사 박경철의 청소년을 위한『자기혁명』. 2011년 출간되어 많은 독자들의 사랑을 받았던《시골의사 박경철의 자기혁명》의 청소년 버전으로, 저자가 청년들을 염두에 두고 6년이라는 긴 시간을 들여 완성한 책이다. 저자는 청소년들이 아프지만 인정해야 하는 현실, 힘겹지만 극복해내야 하는 것들에 대해 진솔하게 이야기한다.
- 저자: 박경철
자기혁명을 읽고
첫 일반 사회 수업 시간에 선생님께서 혁명이란 세상을 뒤엎는 엄청난 변화에 쓰는 말이라고 가르쳐 주셨습니다. 자기 혁명이란 제목을 보고 그 말씀을 떠올렸을 때 나에게 변화를 일으킨다, 나를 바꾼다, 실제로 달라질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인지 읽기 싫어져도 혹시나 다 읽고 나면 약간의 효과가 있지는 않을까 하는 생각에 중간에 차마 책을 덮을 수가 없었던 것 같습니다.
고등학생이 되고 어느새 한 학년이 훌쩍 지나게 되면서 고등학생이 되면 알아서 내가 달라져 있을 것이라 믿었던 게 잘못 되었단걸 아는 순간 더 이상 시간을 이렇게 보내면 안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내가 원한다하여 엄청난 기억력이 생기거나 없던 집중력이 생겨나는 것도 아니기에 바뀐 내 모습을 기대한다는 건 너무나도 막막했습니다. 그러던 찰나 저자가 10분만 일찍 일어나면 달라질 수 있을 것이라 했던 말이 떠올랐고 뭐 10분으로 달라지겠나 싶었지만 지각비 아끼는 셈 치고 다음날부터 바로 실행에 옮기기 시작했습니다. 그랬더니 비록 일어나는 것은 힘들었지만 아침 시간이 조금 더 여유로워졌고 지각비 천원을 내지 않기 위해 무거운 가방을 들고 긴 치마를 붙들며 달릴 필요가 없어지게 되어서인지 아침부터 조급해하며 하루를 정신없이 보내는 일이 어느 순간부터 없어져 있었습니다. 특히 수업시간에 졸아 매일 선생님께 싫은 소리를 듣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 무엇보다 기뻤습니다. 이 일이 있었던 뒤로 굳이 큰 것부터 해내려하기 보단 사소한 것 하나부터라도 바꿔보려 노력한다면 충분히 해낼 수 있단 자신감이 생겼고 덕분에 내 자신에게 조금 더 믿음이 생기게 되었습니다. 다른 사람들이 보기엔 뭐 이런 걸 가지고 그러나 싶기도 하겠지만 저에게 이것 또한 엄연한 변화였고 혁명이었습니다.
항상 공부를 했는데도 점수가 왜 이렇게 나오지 않느냐고 투덜거리던 저에게 ‘내가 노력하고 있다면 기다림도 당연하게 받아드리는 여유가 필요하다’는 말이 너무나 와닿았습니다. 무엇을 하든 과연 내가 최선을 다한게 맞는지 되짚어보고 그렇다면 그 결과를 기다릴 줄 아는 사람이 진정한 프로라는 것을 이제야 알게 된 듯 했습니다. 아직까지 저에겐 모든 것들이 먼 길이지만 이 말을 되새기며 인내심을 가지고 이뤄보려는 마음을 잊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페이스북에 접속하여 뉴스피드를 살펴보고 있었다. 그 때 한 그림이 눈에 띄었다. 오른쪽엔 정장을 차려입은 신사가, 왼쪽엔 밀짚모자를 쓴 남성이 강을 사이에 두고 낚시를 하고 있었다. 정장을 입은 남성은 부유한 자를 상징하고 밀짚모자를 쓴 남성은 가난한 자를 상징함을 알 수 있었다. 가난한 자는 강에서 물고기를 낚고 있었다. 부유한 자의 낚시대는 가난한 자가 잡은 물고기로 향했다.
자본주의는 쉽게 말해 일한만큼 그 대가를 받는 것이다. 받아야 할 것을 마땅히 받는다는 정의(Justice)의 정의(Definition)에 부합한다. 현재 전 세계 대부분의 나라들이 취하고 있다. 세계적인 학자들도 수많은 연구를 거쳤다. 우리는 자본주의가 당연한 듯 가장 이상적인 사조라 생각해왔다. 그러나 SNS에서 보았던 그림은 우리에게 분명히 무엇인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시사해주고 있었다.
돈이 있어야 돈을 번다. 가진 자들은 부를 이용하여 천문학적으로 부풀린다. 페이스북의 그림처럼 부유한 자는 긴 낚시대를 가지고 가난한 자의 것들까지 착취한다. 반면 돈을 벌기 위한 돈도 벌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다. 부모님의 재산을 물려받아 일 안해도 평생 먹고 살만 한 사람과 하루 12시간 열심히 일하여 겨우 입에 풀칠하는 사람 사이에는 자본주의가 세운 벽이 있다. 중세시대 지주와 농노사이에 존재했던 벽과 다를 바 없다. 일한 만큼 대가를 받을 수 있는 의미가 퇴색되었다. 출발선부터 불공평하다는 것이다.
원시시대. 소유에 대한 욕심은 어쩌면 인간의 본성이다. 잉여 생산물이 생기기 시작하면서 인류는 그렇게 자본주의의 싹을 틔웠다. 그 싹은 시대를 거듭하여 자본주의라는 거대 경제체제를 이룩했다. 단기간에 상상할 수 없을 정도의 비약적인 발전, 여태 인류의 발전에 유례없는 속도였다.
이상적인줄로만 알았다. 부의 무한한 축적, 체감할 수 있을 만큼 달라진 세상은 사람들로 하여금 자본주의교의 신도로 전락시켰다. 오래지 않아 극심한 빈부격차, 환경오염이 나타났다. 그제야 자본주의에 대한 허상을 인지했다. 이미 깊숙이 들어온 하나의 사회경제체제가 사회 전 분야에 걸쳐 영향을 끼쳤다. 누구도 이러한 자본주의에 대해 명쾌하게 정의내리지 못했다.
자본주의는 자유자본주의, 신자유자본주의, 수정자본주의, 계획자본주의 등 변화에 변화를 거쳐 왔다. 자본주의, 왜 변할까? 이 질문에 너무도 간단한 결론을 내렸다. 자본주의는 완전체가 아니다. 그러기에 변화하는 세상의 흐름에 맞춰 자본주의 또한 변하지 않으면 학문적인 메커니즘뿐만 아니라 사회 전체의 시스템이 붕괴된다. 자본주의는 너무나 역동적이다. 역동의 이면엔 불안이라는 것이 존재한다. 사람들은 이런 불안을 없애기 위해 이 역동적인 것을 변화시키는 것이다.
그러나 변화 속에도 결국 한정된 자원 속에서 가진 자들은 끊임없이 부를 축적한다. 그에 대한 반작용으로 제로섬 게임에 의해 가지지 못한 자들의 가지지 못함도 더욱 촉진되고 있다. 계층 간의 벽이 더욱 두터워지고 있다. 이 벽이 막히게 된다면 자본주의는 몰락하고 만다. 이미 세계적인 부호나 단체의 자금은 국가가 통제할 수 있는 범위를 벗어났다. 마치 21세기 현대 사회는 칼날 위에서 곡예를 부리는 곡예사와 다름없게 된 것이다.
마르크스가 주장한 사회발전단계설을 보면 자본주의 이후 공산주의를 제시하고 있다. 자본주의의 몰락이 공산주의를 야기하는 그의 주장은 전혀 불가능하지 않은 가능성이다. 초인플레이션이나 초디플레이션은 결국 사회파시즘을 초래하여 공산화를 표방할지도 모른다.
어떠한 경제사조도 이데아적 메커니즘은 없다. 현대 자본주의 또한 순수 자본주의가 아니라 일부 사회주의적인 성격을 띠고 있는 부분도 많다. 우리가 앞으로 어떻게 변화시켜 나가느냐에 따라 문명의 발전과 퇴보를 결정하게 될 것이다. 본디 이념은 인간을 중심으로, 인간을 위해 만들어진 것이다. 이러한 기본 인식을 바탕으로 사회 구성원들이 함께 변화시켜 나간다면 정말 우리가 그리는 유토피아를 향해 한 걸음 나아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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