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4대 영화제
칸느 영화제
칸느 영화제는 현재 유럽은 물론 세계적으로도 가장 규모있고 화려한 영화제로 이름 높다. 매년 출품작만도 6백여편을 상회한다. 행사때마다 세계 각지에서 몰려든 제작자, 감독, 배우, 비평가, 배급업자들로 성황을 이룬다.
개최시기는 매년 5월. 제 2차 세계 대전 직후인 1946년 당시 문화상이었던 앙드레 말로가 주도해 고고성을 터트렸다.대상은 1949년부터 5년간 '그랑프리'라고 불렸다가 지난 55년부터 '황금종려상' 으로 이름표를 바꿔 달았다. 당시에는 영화와 관광도시 칸느를 상호 연결시키고, 베니스 영화제를 견제하겠다는 야심아래 문을 열었다.칸느 영화제는 영화사조 부각에 총력을 쏟고 있다. 특히 작가주의 영화(Auteurism)를 전폭지지하고 있다. 1960년 페데리코 펠리니의 ‘달콤한 생활’을 필두로 이듬해 루이스 부뉴엘의 ‘빌리디아나’, 63년 루치노 비스콘티의 ‘산표범’, 67년 미켈란젤로 안토니오니의 ‘확대’에 황금종려상을 선사하면서 영화제 성격을 분명히 했다. 또한 64년에는 자크 드미의 ‘셀브르의 우산’, 66년 클로드 를루쉬의 ‘남과여’를 발굴하는등 새로운 작가찾기에도 심혈을 기울여 왔다.
지금은 세계최고 권위를 자랑하는 깐느 영화제지만 우여곡절 또한 만만치 않았다. 1948년에는 재정부족과 프랑스 영화계 내분 탓에 영화제가 불발됐는가 하면, 1968년은 누벨바그와 함께 등장한 장 뤽 고다르, 프랑스와 트뤼포, 클로드 를루쉬 같은 악동들이 “브루조아 영화제를 분쇄해야 한다”며 영화제 취소를 강력하게 요구하기도 했다.
1960년부터는 영화제와는 별도로 영화시장(마켓)이 열리고 있다. 최근에는 영화시장 규모가 영화제를 압도, ‘마켓을 위한 영화제로 변질됐다’는 비난을 감수하고 있다.
경쟁부문을 중심으로 ‘주목할만한 시선’이 공식부문, 양켠에는 감독주간과 비평가 주간을 세웠다.
베니스 국제영화제
영화제가운데 최고(最古)연륜을 자랑한다. 베니스 영화제는 1932년 미술전람회인 베니스 비엔날레의 조각 행사로 첫선을 보였다.
개최 당시 파시스트 정권인 무솔리니 정부가 이탈리아 문화정책을 선전하기 위해 문을 열었고 그만큼 정치적인 성격도 강했다. 그러나 2차대전직후 ‘영화 품격을 격상시키자’는 목소리가 제기된뒤 영화제 본래의 목적을 되찾았다.
60년대 들어서는 ‘예술을 위한 예술’을 주장하며 수상 제도를 없앤 이후 참가국들이 발길을 끊었고, 1972년엔 잠시 폐지위기까지 직면 했다. 그러나 1979년 카르로자니 위원장에 의해 ‘황금사자상’수상제도가 부활된뒤 예전의 명성을 되찾았다.
베니스 영화제는 특히 유럽이외 지역 국가들에게 문호가 넓다.
베니스 영화제의 최대 성과라면 구로자와 아키라. 당시 무명에 불과했던 구로자와 아키라의 ‘라쇼몽’에게 황금사자상을 수여해 전세계 이목을 집중시켰고, 이후에도 낯선 영화들에 대한 관심을 잃지 않았다. 89년에는 대만영화 ‘비정성시’(감독 후 샤오시엔)가 그랑프리를 안았는가 하면, 87년에는 임권택감독의 ‘씨받이’가 여우주연상을 거머쥐기도 했다. 92년에는 중국영화 ‘귀주이야기’(감독 장예모), 94년은 대만영화 ‘애정만세’(차이밍량), 97년에는 일본영화 ‘하나비’(감독 기타노 다케시)가 각각 그랑프리를 수상했다.
최근에는 진보적인 집행부와 보수적인 운영위원회가 갈등을 빚는등 다소 파행적인 운영이 엿보인다.
베를린 국제영화제
칸느·베니스 영화제가 예술이나 상업적으로 이름을 높였다면, 베를린 영화제는 이데올로기와 국경을 초월한 영화들을 뱃머리에 내세웠다. 특히 정치적으로 민감한 주제를 주로 다루거나 제3세계의 논쟁적인 주제를 다룬 작품들을 선호하고 있다.
1951년에 처음 개최됐다. 그랑프리는 ‘황금곰상’.
초기엔 일반관객들의 투표를 통해 수상작을 선정하는 심사방법을 도입했지만, 규모가 커지면서 현재는 국제적인 저명인사들에 의해 수상작을 결정한다.
개최시기는 매년 2월. 존 슐레진저, 미켈란젤로 안토니오니, 장 뤽 고다르, 클로드 샤브롤 같은 명장들이 베를린 영화제를 통해 알려지기 시작했다.
한편 페레스트로이카이후 다소 방향감각을 상실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더욱이 재정난에 봉착하면서 헐리우드 영화에게 구애손짓을 보내는등 악순환을 거듭하고 있다.
특히 89년 ‘레이맨’, 90년 ‘뮤직박스’, 92년 ‘그랜드 캐년’, 94년 ‘아버지의 이름으로’, 96년 ‘센스, 센서빌리티’, 97년 ‘래리 플린트’, 99년 ‘씬 레드 라인’ 등 헐리우드 영화들에게 연거푸 그랑프리를 안겨주면서 유럽영화감독들이 베를린 영화제를 회피하는 경향이 두드러진다.
베를린 영화제는 주관부서가 다소 독특하다. 회사형태를 띄고 있기 때문. 명칭은 ‘베를린 축제 유한회사(Berliner Fest-Spiele Gmbh)’이다. 유한회사의 총예산가운데 50%는 연방정부가 지원하고 나머지는 주정부 보조금과 기타 수입으로 채워진다. 개최시기는 매년 2월 중순.
모스크바 국제영화제
‘아제 아제 바라아제(감독 임권택)’의 수상을 계기로 국내에서도 낯설지 않은 모스크바 영화제는 소련 및 동구권 국가들의 새로운 영화 진흥을 위해 개최됐다. 동서해빙을 이룬 최근에는 민주, 공산 양 진영을 막론한 국제영화제로 자리잡았다.
1959년부터 시작됐고, 국제영화제가운데선 유일하게 2년마다 한번씩 개최된다. 홀수해에는 모스크바 국제영화제가, 짝수해에는 칼로비바리 국제영화제가 열린다.
수상작들은 대체로 인간과 고결한 자유 또는 방대한 스케일의 대작이라는 특징을 지니고 있다. ‘데루스 우잘라’, ‘전쟁과 평화’ 같은 작품들이 대표적인 예. 경쟁 부문만 1백여개국이 참가한다. 개최시기는 대개 홀수년 7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