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감 극복
지리산에 종종 마음을 쉬러 간다. 주로 새벽 시간을 이용해서 산을 오르기 시작하는데 새벽 시간이라 그런지 사람이 전혀 없어 무서운 마음도 없지 않다. 낮이라면 무서울 일이 없으련만 어두움은 사람을 두렵게 한다. 두려움을 느끼고 있다면 두려워할 대상이 있어야 하는데 실상 낮이 되고 나면 두려워할 대상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된다. 결국 근거 없는 두려움의 대상을 스스로 만들고 불안한 마음을 가지는 것이다.
우리는 두려움의 대상의 근거 따위는 생각도 않고, 벌렁거리는 심장의 떨림, 머리를 싸하게 훑고 지나가는 서늘함에 놀랄 뿐이다. 두려움을 없애려면 밤을 낮으로 여기고 두려움의 대상이 없음을 믿으면 간단하지만 그렇게 되지 않는 것이 우리 인간의 한계다.
어린 아이가 뭔가에 놀랐는지 막 울어댄다. 그러면 유모는 이것저것 주면서 아이를 달래본다. 그래도 울음을 그치지 않으면 아이의 성격을 추측하면서 비난을 하기도 한다. “지 애비 닮아서 그렇다.”는 둥 유전을 들먹이기도 한다. 그러다가 아이가 울음을 그치지 않았던 이유가 아이의 몸에 꽂혀 있는 핀 때문이라는 것을 발견한다.
우리는 이러한 심리학 실험에서 행복의 교훈을 얻는다. 우리가 어렵게 살아가는 이유, 자꾸 뭔가에 신경을 쓰는 진정한 이유가 무엇인지를 제대로 모르니까 괴로워만 할 뿐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는 것이다.
어두운 밤이라는 두려움의 조건은 진정한 두려움의 대상이 아니듯이 우리가 지금 걱정하고 두려워하는 그 무엇은 우리 스스로 만들어놓은 허상일 수 있다. 진정한 자신의 모습과 상태를 잘 알아볼 필요가 있다.
원인 없는 결과는 없다. 무언가의 원인이 있어야 그에 따른 결과가 나타나게 마련이다. 지레 겁을 먹거나 스스로 허상을 만들지 않을 때, 지금 불안한 상태를 잘 파악할 수 있을 때, 그 원인을 잘 알고 수정해야 불행에서 벗어날 수 있다.
패배감 극복
사육당한 동물은 아예 길들여져서 거기서 벗어날 줄 모르는 경우가 많다. 오랫동안 새장에 갇혀 있던 새는 밖으로 내놓아도 멀리 날아가지 못할 뿐 아니라 날 수 있는 능력을 자신이 가지고 있는 줄도 모른다. 아무리 제 몸에 비해 20배 이상 높이 뛰던 벼룩도 아주 낮은 통에 오래 가두었다가 밖에 내놓으면 20배는커녕 10배도 뛰지 못한다. 유리관에 갇혀 있던 개구리도 자유를 얻은들 유영만 할 뿐 폴짝거리며 뛰지 못한다.
때로 우리 자신도 길들여짐에 안주한다. 그래서 그 이상의 자유와 권리를 주어도 운만 바라보며 거기서 벗어나지 못하고 남 탓만 하는 어리석은 때가 많다.
명마라고 알려져 있지만 성격이 너무 거칠어서 다룰 수 없는 말이 있었다. 말의 이름은 브케팔스, 그 말이 알렉산더에게 끌려왔다. 유명한 마술사도 그 말을 어떻게 해보려 했지만 다룰 수가 없었다. 하지만 알렉산더가 말을 온순하게 만들었다. 그가 태양을 향해 브케팔스의 코를 치켜들고 말을 안심시켰더니 말은 격한 행동을 그만두었다. 사실 말은 자기 그림자를 무서워했던 것이다. 말이 무서워서 뛰면 그림자도 함께 뛰었고 말은 더욱 놀라 또 뛰었던 것이다.
우리 자신도 명마 브케팔스처럼 자신의 음영에 놀라서 기가 죽어 있는 것은 아닐까. 더 잘할 수 있는 일이 있는데도 자신의 능력을 스스로 폄하하고 있을 수도 있다. 더 뛸 수 있는데, 더 이상 뛰려고 하지 않을 수도 있다. 어쩌다 실패한 일에 사로잡혀서 다음 일에 자신감을 잃고 있을 수도, 스스로 만든 징크스에 잡혀서 지레 겁을 먹고 있을 수도 있다. 이러한 근본적인 마음의 자세를 바꾸지 않으면 행복은 요원하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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